
안녕하세요. 근거 중심 물리치료(Evidence Based Physical Therapy)를 전하고 있는 물리치료사 보람쌤입니다.
진료실에서 환자분들을 뵙다 보면, 긴 치료 기간에 지쳐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시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선생님, 주사도 맞고 운동도 하는데 낫는 게 너무 더딘 것 같아요. 차라리 오십견 수술을 해서 꽉 막힌 걸 찢어버리면 더 빨리 낫지 않을까요?”
환자분들의 답답한 심정,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지긋지긋한 어깨 통증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으니까요. 하지만 의학적 근거를 꼼꼼히 살펴보면 수술이 언제나 정답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섣부른 수술 결정은 큰 비용 부담과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는 오십견이 자연 치유되는 데 평균 3~4년이 걸릴 수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전해드렸는데요. 오늘은 그 연장선에서, “그렇다면 수술이 그 지루한 회복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는가?”에 대한 명쾌한 답을 드리려 합니다.
전 세계 의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저널인 란셋(Lancet)에 실린 대규모 연구(UK FROST)를 바탕으로, 오십견 수술의 실체와 올바른 치료 순서를 정리해 드립니다.
1. UK FROST 연구란? (503명의 실제 비교)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듣는 “누구는 수술해서 좋아졌다더라”, “누구는 도수치료 받고 나았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개인의 경험일 뿐,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 정답은 아닙니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동일한 조건에서 비교한 과학적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2020년 발표된 UK FROST 연구는 영국 국가 의료 시스템(NHS) 주관하에 503명의 오십견 환자를 모집하여 진행된 세계 최대 규모의 무작위 대조군 연구(RCT)입니다. 이 연구는 오십견 치료의 3대장이라 불리는 다음의 치료법들을 1년간 직접 비교했습니다.
비교 대상이 된 3가지 치료법
- 1) ACR (관절경적 관절낭 유리술)
전신마취 후 어깨에 구멍을 뚫고 내시경을 넣어, 굳어버린 관절막을 칼로 직접 잘라내는 방식입니다. 흔히 환자분들이 말씀하시는 ‘오십견 수술’이 바로 이것이며, 가장 적극적이고 침습적인 방법입니다. - 2) MUA (마취 하 조작술)
흔히 ‘브리즈망’이라고도 불립니다. 마취 상태에서 의사가 팔을 강제로 꺾어 유착된 관절막을 찢어서 늘려주는 시술입니다. - 3) ESP (조기 구조화 물리치료)
수술 없이 ‘스테로이드 주사’로 염증을 잡고, 전문 물리치료사가 시행하는 ‘관절 가동술’과 ‘단계별 운동’을 병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연구진은 이 세 그룹의 환자들을 12개월 동안 추적하며, 어깨 기능 점수(OSS), 삶의 질, 통증 정도 등을 꼼꼼하게 평가했습니다.
2. 오십견 수술 vs 물리치료, 효과 차이는?
많은 분들이 “비싸고 위험한 수술을 하면 당연히 물리치료보다 결과가 훨씬 좋겠지”라고 예상합니다. 하지만 1년 뒤 열어본 성적표는 우리의 상식을 뒤집었습니다.

① “결국 1년 뒤 결과는 거의 같았습니다”
연구 결과, 12개월 후 어깨 기능 점수(OSS)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수술 그룹(ACR): 40.3점
- 물리치료 그룹(ESP): 37.2점
수치상으로는 수술 그룹이 약 3점 정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 3점 차이는 환자가 ‘확실히 더 낫다’고 느낄 수 있는 기준점(MCID, 5점)에 미치지 못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즉, 통계적으로는 미세한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환자가 피부로 느끼는 임상적인 효과는 사실상 대동소이하다는 것입니다.
② “초기 회복 속도는 오히려 물리치료가 빠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치료 초기(3개월 이내)의 속도입니다. 위 그래프를 보시면 물리치료 그룹(빨간 선)은 치료 시작 직후부터 가파르게 기능이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수술 그룹(회색 선)은 수술 후 통증 관리와 초기 재활 과정 때문에 초반 회복 곡선이 상대적으로 완만하거나 주춤합니다.
즉, 굳이 몸에 칼을 대는 부담을 안고 수술을 받더라도, 안전한 물리치료보다 더 빨리 낫는다는 보장은 없다는 뜻입니다.
3. 부작용과 비용: 우리가 몰랐던 위험들
효과가 비슷하다면, 그다음 따져봐야 할 것은 ‘안전’과 ‘비용’입니다. 저는 물리치료사로서 이 부분을 환자분들께 가장 강조하고 싶습니다.
🚨 부작용(Complication) 발생 건수 비교
- 오십견 수술(ACR): 8건 (4%) – 폐렴, 심부정맥혈전증, 신경 손상 등 심각한 부작용 포함
- 마취 하 조작술(MUA): 2건 (1%)
- 물리치료(ESP): 0건 (0%)
보시다시피 물리치료는 심각한 부작용이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가장 안전한 치료법이었습니다. 반면 수술은 드물지만 감염이나 마취 사고 등의 위험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효과가 비슷하다면, 굳이 4%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요?
💰 비용(Cost) 비교
비용 면에서도 수술은 가장 비효율적이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관절경 유리술은 물리치료보다 평균 약 300만 원(£1,733) 이상 더 비쌌습니다. 가성비로 따지면 ‘마취 하 조작술(MUA)’이 효율적이었으나, 안전성까지 고려한다면 물리치료가 가장 합리적인 1차 선택지임은 분명합니다.
4. 보람쌤이 제안하는 2025년 치료 로드맵
UK FROST 연구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어떤 치료가 임상적으로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가장 안전하고 비용 효율적인 순서대로 치료를 진행해야 합니다.
[단계별 오십견 치료 전략]
- 1단계: 조기 구조화 물리치료 (ESP)
가장 먼저 시도해야 할 ‘정석 치료’입니다. 스테로이드 주사로 염증을 조절하고, 도수치료로 관절을 늘려주세요. 부작용 없이 안전하게 회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 2단계: 마취 하 조작술 (MUA)
충분한 기간(보통 3~6개월) 동안 물리치료를 받았음에도 차도가 없다면, 수술 전 단계로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 3단계: 오십견 수술 (ACR)
모든 보존적 치료가 실패했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유착이 심한 경우에만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5. 결론: 수술은 마법이 아닙니다
오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오십견 수술이 물리치료보다 월등히 빨리 낫는다는 근거는 부족합니다.
- 1년 뒤 치료 결과는 수술이나 물리치료나 거의 비슷합니다.
- 오히려 수술은 부작용 위험과 비용 부담이 가장 큽니다.
물론 뼈의 구조적인 문제나 회전근개 파열 등 동반 손상이 있는 경우에는 수술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 유착성 관절낭염(오십견)이라면, “아프다고 덜컥 수술부터 결정하지 마세요.”
지금 선생님과 함께하고 있는 꾸준한 운동과 도수치료가, 세계적인 논문이 입증한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치료법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수술 없이 어깨를 풀어주는 ‘과학적인 스트레칭 루틴’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참고 문헌
Rangan, A., et al. (2020). Management of adults with primary frozen shoulder in secondary care (UK FROST): a multicentre, pragmatic, three-arm, superiority randomised clinical trial. The Lancet, 396(10256), 977-989.